진료실 일기 51

75세 할머니는 마실 나온 사람처럼
에둘러 이야기했다.

 

환자가 많아 바쁜 오전 시간이나
내 체력이 고갈되는 오후 시간이나
마찬가지로 오래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고마울 리 없다.

 

아픈 증상을 병록지에 기록할 수 있게 간단히 정리해서 말해주고 그것을 시처럼 간략하게 기록하면서
진료 속도를 내며 시계 톱니처럼 빈틈없이 진료가 물 흐르듯이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.

 

할머니 얼굴에는 자못 여유가 있다.
부드러운 표정의 옅은 웃음에는
서두르는 내 속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야속함이 있다.

 

내가 바쁘니 아픈 곳만 말씀하시라고
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.

 

할머니의 긴 서사가 느린 말투로 시작된다.

 

언젠가는 끝이 나니까 성의 없이 들어주다가 내가 필요한 정보만 골라 타이핑하면 된다.

 

원장님이 받아주었던

내 손녀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어요.

 

그런데

원장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네요

 

아~~

그래요, 감사합니다.
저도 많이 늙었어요.
머리 염색도 하고 피부 레이저 시술도 받고 나이를 조금씩 감추고 살아요

 

할머님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네요

축구 경기의 하이드레이션 시간처럼 진료를 잠시 쉬어가자고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는다.

 

옆에 있는 직원은 이 뜸금없는 풍경을 어이없이 지켜보다

 

원장님,

진료가 많이 밀렸어요

 

아, 그렇지

그런데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?

 

이미 한 명의 진료가 끝났을 시간이다

 

진료하는 의사도 바쁘지만

바쁜 일과 중에 짬을 내서 찾아온 환자들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

 

동사무소 민원실의 긴 대기표를 받아들고 한없이 느린 공무원의 업무처리를 애통터지게 바라보던 기억이 소환된다